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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산책12] 숲속의 속삭임 <청남대 가는 길>

박무용 2020-12-01 조회수 351

숲속의 속삭임《청남대 가는 길》 


“白髮三千丈   백발삼천장
 緣愁似個長   연수사개장
 不知明鏡裏   부지명경리
 何處得秋霜   하처득추상”
 
「흰머리
 삼천장이라!

 걱정 많아
 이렇게 길었구나.

 모르겠네
 거울 속 내 모습

 어디서
 가을 서리 얻어 왔는지.」

 중국 당나라 성당시인 두보(712-770)와 함께
 많은 시인으로 부터 존경을 받는 시인으로
 호가 “시선’‘ “적선”, 자가 “太白”으로 불리는

「李白 (701-762)」의
 
[秋浦歌(추포가)--추포호에서 노래하다.]라는

 만년에 영왕(永王)-이린(李璘)의 거병에
 가담한 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사면되어
 추포(秋浦)에서 병들고 늙은 몸으로 지내며
 자신의 소회를 읊은 한시입니다.

※추포(秋浦); 지금의 중국 안휘성 귀지현 서남쪽에
 있는 길이 40Km, 폭 16Km 되는 호수임.

 이백의 조상이 죄를 지어 서역으로 내쳐 졌다가
 이백의 아버지 대에 촉으로 들어오면서
 성(姓)을 이(李)로 정했다고 하죠.
 
 젊었을 때
 유가.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심지어 무술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경험과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했던 것이
 후일 그의 시 세계가 자유자재하게
 무르익게 한 원동력이 되었죠.

 천성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飲中八仙歌(※8인의 유명한 음주가)’의
 한사람으로 흥이 나면 곧 시를 쓸 수 있는
 천재 시인으로 평가 되었지요.

 25살때 長江(※양자강)을 따라서
 강남.산동.산서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으며
 42세에 長安(※당나라 수도)에서 ‘하지장’을 만나
 그의 추천으로 현종 때 관직을했지만,
 1년만에 정치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모함.유배.사면받아 유랑생활 시작으로..

''안사의 난(755년)''이 발발 할 당시
 이백은 55세로 그 이듬해 그는 현종의 아들-
 영왕인(永王璘)의 군대를 참여했으나
 영왕의 군대가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유배형으로 처해져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오늘날 중경시 삼협부근에서 사면을 받아
 
 추포호에서 위의 한시로
 자신의 심정을 노래합니다.

 이백은 위의 시에서처럼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이라는
 기묘한 과장법을 사용하여
 내면의 시름을 단적으로 표현했지요.
 
 그후
 山中은 그의 詩的 세계의
 중요한 무대로 되면서
 
 낭만이 가슴에 가득한 시인이었고
 자연주의의 대표자였지요.

 조선 중기 때 문신으로 두루 관직을 하고
 문명과 율시는 물론 글씨에 능했던
 
 양곡-소세양(1486-1562)은

[夜座不寐(야좌불매)-잠 못이루는 밤에..]

“眼花看更墨   안화간갱묵
 頭雪掃還生   두설소환생”

「눈꽃이 어른거려
 눈 비비니 더 껌껌하고

 머리에 내린 눈을
 쓸어도 도로 나는구나.」라고

 가을 서리를 백발의 자신으로 대변하여
 노년의 슬픔을 노래한 '이백'이나
 머리에 내린 눈을 백발로 표현한 양곡-'소세양'
 인생무상함을 같이 노래하니
 어찌 비껴 갈 수 있으리오!
 
 누구나 죽는다지요?
 축복받은 사람만이 곧게 늙어가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요!
 늙어가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서로 혐오하기보다 존중해가면서
 좀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이 글은 한국간이식인협회 네이버밴드에서 발췌하였습니다.  


https://band.us/band/48032402/post/42957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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