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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96] 가야산 독서당에서 노래하다

박무용 2022-07-26 조회수 145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狂噴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尺只間  인어난분척지간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  고교류수진롱산

「미친 물결
 쌓인 돌 묏부리를 울리니

 지척서도 사람 말
 분간하기 어렵구나.

 올타글타 하는 소리
 내 귀에 들릴까봐

 흐르는 물 부러 시켜
 산을 온통 감싼게지..」

 신라 말기 때 학자.문장가로 경주 최씨의
 始祖(시조)이며, ‘고운(孤雲)’을 字로 한

“崔致遠-최치원(857-?)”이 지은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가야산
 독서당에서 노래하다)]라는

 최치원이 유학을 끝내고 고국 신라로 돌아와
 정치로 자기 이상을 펴보려고 했으나, 현실은
 끝내 그를 받아주지 못해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
 세상을 등지고 마음의 한을 노래한 한시입니다.
 
“최치원”은 869년 13살로 당나라 국비유학생으로
 유학을 떠난지 5년만에 과거에 합격한
 한국 성리학의 鼻祖(비조)이죠.
 
 885년 29세에 신라로 귀국하여 중앙관리에
 임명되었으나,
 그후
 894년,39세에 국정개혁 제안서인 [時務策 10여
 條(조)]를 진성여왕(51대 887-897)에게 올린 것이
 받아들여져 六頭品 신분으로서는 최고 관등인
‘아찬’에 올랐지만,
당시 사회적 현실에서 자신의 개혁안이 실현될 수
 없음을 비관, 관직에 물러나 은퇴하게 됩니다.

 최치원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산 홍류동 깊은계곡,
골사이로 쏟아져 내린 물이 힘껏 바위에 부딪쳐
 옆사람 말소리도 안 들리는 곳
 나는 여기서 조용히 살다가 가겠다.

“고운-최치원”은 귀국하여 끝내 유랑의 길을 
 걸어가면서 “知音(지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지 않았을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라고
 수필가 피천득선생은 말하고있듯이
 
 조선 성리학의 비조로 숭상받아 온
 고운-최치원 현인도 인연의 줄을 살리지 못하였으니
 
 사람 살아가는 일인 세상사에
 인연의 맺임이 그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래서 인연따라 살아가라고 하네요. 



◇인연《숲속의 속삭임-16》
..연필스케치로

 방배골 巢一齋에서 
 놀공자 潭然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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