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마당
보건복지부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간이식인협회
보건복지부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간이식인협회
뜰에 핀 매화도 지려 하는데..
''有約來何晚 유약래하만
庭梅欲謝時 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 홀문지상작
虛畵鏡中眉 허화경중미''
「기약하고 어찌
이리 돌아오지 않나요?
뜰에 핀
매화도 지려 하는데.
문득 들려오는
가지 위 까치 소리에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봅니다.」
조선 선조 때 여류시인 호를“玉峯(옥봉)”이라
부른 “李玉峯-이옥봉(?-?)”이 지은
[閨怨(규원)-규방의 원망]으로 여성적인 섬세한 필치로 情恨(정한)을 읊은 閨怨詩(규원시)입니다.
“이옥봉”은 조선중기 때 임진왜란 의병장이었으며,
옥천군수를 지낸 바 있는 왕실의 피붙이
“이봉(?-?)”의 서녀로 태어나
시집 갈 나이가 되어도
혼처를 쉽게 정하지 못하다가
그녀는 시를 잘 짓는 조원(※趙瑗1544-1595)을
흠모하여 그의 소실이 들어갔지만 끝내 버림을 받죠.
옥봉은 임진왜란 직전 35세를 전후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옥봉은 허난설헌(본명 초희-허균의 누님
1563-1589)과 더불어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
이라고 평가되고있습니다.
옥봉의 남편 ※조원(1544-1595)은 선조 때 문신.
남명-'조식(1501-1572)'문인으로 1575년(35세)
정언이 되어 당쟁이 심하자
이에 대한 탕평의 계책을 상소를 하였으며,
이조좌랑.삼척부사.승지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고, 자손교육도 단엄했다고 합니다.
임천 조씨-趙瑗(조원)의 아들 희정과 희철 두 형제가
임진왜란 때 모친이 왜적에게 능멸 당하려 하자
이를 맨손으로 제지하다 희생된 두 형제의 효행을
조정에서 바로※趙瑗의 본가(현 종로구 효자동100)
双紅門(쌍홍문)터에 두 개의 정려를 세우니
이것이 바로 경복궁 뒤 종로구 孝子洞(효자동)의.
유래가 되었다고 하죠.
매화 필때 임(*趙瑗)과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매화가 지려 하는데도 임은 오지 않는구나!
어느 날 아침 나뭇가지 위에서 까치가 울자
행여! 그 님이 오시지나 않을까? 하는 설렘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해 보는데..
임과의 재회를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임을 위해 단장하는 여성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는
이 詩의 매력은..
마지막 句의 '부질없이-虛(허)'에
응축되어 있지 않나요?.
부질없어도 '화장을 고치곤 해!'
그래도 님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이것 밖에 할 수 없음을..
◇뜰에 핀 매화도 지려 하는데..
《홍매화》
..연필스케치로
방배골 巢一齋에서
놀공자 潭然올림.